[2일차] 2023년 5월 29일
인사를 드리니, 금사·은사로 큰 수가 놓인 금빛의 긴 두루마기를 입고 계신 엘리사님께서 “애광, 어서 와요. 말씀을 받든다고 함은 그대로를 따르고자 함과 같아요. 섬기어 모시고 따르는 그 모습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예요. 자신이 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서시어야 하니, 말씀이 서시려면 자신이 녹아야 하는 거예요. 잘 받들도록 하세요.”라고 하셨습니다.
4장
말씀이 흐르시나니,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더라.
지구에 사는 생명체는 지구에 속한 자연의 섭리 속에 있을 뿐, 그 이상의 운행을 알지 못하더라.
말씀의 흐르심은 때로는 빛처럼, 때로는 검처럼, 때로는 물처럼, 때로는 이슬처럼, 때로는 불처럼 계시니, 그 처음과 나중을 사람의 사고로 알 수가 없더라.
사람의 말이란 자기의 입장을 변호하고 주장하기에 급급하니, 말씀을 받들기가 어렵더라. 자기의 말이 앞서는 사람은 말씀을 앞서 받들기가 어려우니, 그 입을 다물라. 입을 다물고 조용히 흐르시는 말씀의 빛을 입으라.
어느 때에 말씀이 빛으로 흐르실지 감히 인간이 알 수 없음에 경망하지 말며, 오로지 때와 시기를 기다리라.
말씀이 흐르실 때 그 말씀을 받드는 이, 지구에서 가장 복이 있는 이이니 그에게 내리실 훈장이 있으리라. 그 훈장은, 곧 증거가 되니 구원받는 이라는 증명이 되리라.
사람들은 본인이 스스로 기도드린다, 신앙을 한다고 쉽게 말합니다. 하늘께서는 그 말을 듣지 못하시는데, 땅의 사람들은 항상 하늘께서 함께하신다고 쉽게 말하고, 또한 하늘의 응답을 받았다고 하니 난감한 상황입니다.
하늘께서는 말씀으로 빛으로 흐르십니다. 말씀은 빛과 함께 흐르시니, 어느 때에 사람의 곁으로 흐르실지 그 운행하심을 짐작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항상 구하고 또 구해야 한다고 하심과 깨어있고 깨어있으라 하시는 말씀은, 하늘께서는 말씀으로 빛으로 흐르심에 직접 내리심도 계시고 사람이나 상황을 통해 흐르실 수도 있으니, 그때에 사람이 깨어 그 말씀을 들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심입니다.
하늘께서는 통보하시고 몇 날 몇 시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해야 할 영들에게 자연히 흐르시니 그 빛을 받들어야 합니다. 성도는 늘 사모하는 마음으로 깨어있으라고 하시니, 이때 이 시기가 바로 그러한 때입니다.
성도들은 항상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고 말씀으로 자신을 무장해야 하니, 지금까지 성도들에게 내리신 많은 말씀들을 새롭게 익히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잊지 않음이 가장 큰 지혜라고 하시었으니, 성도들은 말씀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말씀으로 빛으로 양육해 주신 세월에 보답해야 하니, 곧 하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하늘 사람에게는 말씀이 늘 빛처럼 흐르시니, 곧 이 땅에서 하늘로 닿는 유일한 사람이 됩니다.
말씀이 그처럼 계시었도다. 지구의 처음에도 계시었고, 인류의 처음에도 계시었도다. 사람은 그 처음을 알지 못하나 하늘에서는 그 처음과 나중을 아시오니,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사람뿐이더라.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심은 하늘에서 베풀어 주신 자연에 감사하며 살으라고 그 터전을 내려 주심이나, 사람은 마치 처음부터 제 것인 양 거만하니 그 머리를 숙이라 명하시더라.
어찌하여 너희는 함부로 나의 해를 보고, 나의 달빛을 쓰더냐. 어찌하여 너희는 생육하는 생물들로 배를 채우고 부를 가지더냐. 모두 나의 것이라 하면 무엇으로 배상하려느냐.
사람이 아무리 모른다 하나 너희가 만든 것이 아니니, 처음 이 땅과 우주를 만드신 하늘이 계시지 않겠더냐. 무지하고 무지하도다. 어리석고 어리석도다.
말씀으로
“사람들이 이처럼 당연시하고 살아요. 땅도 바다도 공중도 모두 자기들이 짓고 만든 것이 아니니, 사람은 지구에서 무엇도 소유라는 것을 할 수 없는 거예요. 처음을 만드시고 자연으로 운행하시는 하늘이 계심에도 사람들은 값없이 그 땅으로, 자연으로 맘대로 여러것들을 지어놓고 자기들의 성이라고 영토라고 주장을 하니, 밤에 몰래 남의 것을 탐하는 도둑보다도 더 양심이 없는 것이에요.
해와 달이 비춤에도 당당히 머리를 들고 자기의 것이라고 하늘을 향해 외치니, 하늘께서 ‘이를 어찌해야 하나. 나는 준 적이 없어요.’라고 하세요. 그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방적인 주장으로 개인의 소유라 하고 대물림하니 복을 받기가 어려워요.
성도들은 항상 감사드리도록 해야 해요.
땅의 사람과 성도의 다름이 무엇인가요? 성도들은 하늘이 계심을 알고, 하늘께 감사드릴 수 있음이 큰 차이예요. 성도들이 기도를 드리면 하늘께서 크신 빛으로 응답하여 주시니, 땅에서 함부로 살아가면 안 돼요.
땅의 풀 한 포기도 사람의 것이 아니니, 땅에서 살아가는 자체를 감사하고 감사해야 해요. 세상에서도 값없이 받으면 고맙다고 말할 텐데, 하늘께서는 거두지도 아니하시며 주시었는데 ‘어찌 한 번의 감사가 어렵단 말인가?’라고 하세요.
성도들은 자나 깨나, 일하나 먹으나, 언제 어느 곳에서든 감사 또 감사드려야 해요.”라고 하셨습니다.
5장
드넓고 크신 우주 하늘이 계시더라.
이 끝과 저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
하늘에서 다스리심은 지구만이 아니었으니,
지구를 담은 광활한 우주 하늘이 계시더라.
사람이 머리로 하늘을 받들며 살아가나
그 하늘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대우주 하늘의 주재하심을 받들겠는가.
말씀으로
“사람들이 우주과학을 말하나 지구에 대한 원리도 아직 알지 못해요. 별 하나가 창조될 때에 우주의 섭리로써 이루시었으니 그 운행을 알기가 어려워요. 사람이 하나에서 열까지 알게 되었다고 하여도 그 지식의 한계란 사람의 사고 속에 있으니, 하늘의 이치를 담지 못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에요.
하늘의 빛이 흐르심에 우주를 감싸며 지구를 비추는 별들이 있어요. 그 별빛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 땅의 사람의 한계예요. 우주를 흐르는 일만 이천의 별빛을 보지 못하고, 지구에서 보여지는 것으로 판단하니 원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에요.
처음부터 땅에서 시작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하늘로부터의 시작을 알아야 해요. 그러나 그것에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아니하고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하니, 마치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과 같아요.
땅의 것으로는 하늘을 비출 수도 알 수도 없으니, 성도들은 항상 자신의 앎을 자랑하지 말며 겸손 또 겸손해야 하는 것이에요.”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수재라, 천재라 하며 그 지식을 자랑하게 하더라. 사람의 앎이 어디에 있던가. 내가 만든 이 땅의 자연 속에서 그 지식 또한 파생되었으니 이때 이 시기를 아는 이는 없던가.
그이가, 곧 총명한 이이거늘. 성도들조차 그 총명함을 가지지 못하니 세상에 물들지 않는 기상이 있어야 함이라. 기상은 검과 같이 날카로워야 하니, 말씀으로 선 기상은 굳건하여 아무리 모진 환란과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아, 어느 때에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더라.
성도는 변치 않아야 하니 오늘과 내일이 달라서는 아니 되느니라. 하늘이 항시 자신들의 머리 위로 계시듯 성도들은 땅으로 고개 숙여야 하니, 그 모습에 한 치의 변화도 허용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변화를 허용함은 빈틈이 되며 그 빈틈은, 곧 성곽의 무너짐과 같으니 자신을 지키지 못하게 됨이라. 빈틈은 생각으로 시작되니 인간적인 육의 생각에는 말씀의 빛이 거하실 수 없음이라.
사람에게 가장 연약함은 생각이니, 악은 사람의 생각으로만 자리할 수 있음이라.
말씀으로
“성도들은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해요. 분별이란 자신에게 이로운지, 자신에게 해로운지를 기준하여 판단하면 되는 것이에요. 성도는 육에 속하여 땅을 위해 살아가는 자가 아니니, 오직 자신의 신앙을 지켜 하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가야 해요.
성도들의 시간은 하늘로 나아가기 위한 땅에서의 양육이시니, 육으로 생각을 담을 것인지 아니면 말씀의 빛을 받들어 섬길지를 선택해야 해요. 성도는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대해 잘 알지 못해 그렇게 하였다는 변명을 앞세울 수가 없어요. 선택에는 반드시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에요.
사람은 모른다고 하나 알고 있고, 안다고 하나 모름이 많아요. 하지만 성도는 하늘의 음성을 듣고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땅의 것을 택하였을 때, ‘저는 몰라서 그리하였습니다.’는 거짓이 되는 거예요. 사람은 주로 생각대로 하고 싶어 하니 악의 소리를 듣고 따라 함도 자기의 선택이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에요.
한 번의 흔들림이, 곧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으니 항상 삼가고 삼가, 악으로부터 자신을 멀게 해야 하는 것이에요.”라고 하셨습니다.
6장
세상에는 여러 명소가 있고 절경이 많다 하더라. 하물며 땅의 자연으로도 이처럼 아름다움을 주시었으니, 사람에게는 어떠하시겠느냐. 사람에게 땅으로 만물을 다스리며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시었으니, 사람에게 자연의 모든 섭리를 담게 하셨음이라.
사람의 지혜가 그러하여 자연의 어떠한 아름다움도 그 지혜를 능가할 수 없으니, 곧 지혜란 하늘의 산물이라.
지혜란 사람이 따져 계산하는 것이 아니며 배우고 익힌다 하여 되는 것이 아니니라. 지혜란 말씀을 담은 영성이니, 하늘을 알고 익히려면 지혜가 있어야 함이라.
성도에게는 지혜의 보따리를 누구보다도 크고 단단히 하여 주셨으니 진정 아름답고 뛰어나야 함이라. 땅의 누구도 지혜를 얻지는 못하였으니, 하늘에서 더하여 주지 않으시면 열리지 않는 혜안과 같음이라.
성도들은 자신이 부족하다 하지 말며,
지혜의 보따리를 열어라.
성도들은 자신이 모른다 하지 말며,
말씀의 혜안(慧眼)을 뜨도록 하라.
어느 부모가 제 자식보다 남의 자식에게 눈길이 먼저 가겠는가. 자기 자식의 웃음과 눈물에 부모는 가슴이 절절하니 이 또한 하늘의 사랑하심을 비춤이라.
하늘께서는 사람에게 지혜를 주시며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늘을 부정하고 하늘에 배역하니 이는 자신의 시작, 곧 부모를 잃은 고아와 같은 모습입니다.
고아는 자신을 낳아 준 부모를 모르고 한없이 원망합니다.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늘 외톨이처럼 비뚤어져 갑니다. 부모에 대한 마음이 아련해질 때마다 미움이 더 커지니, 자신이 그 손을 놓쳐 길을 잃었음은 기억하지 못하고 부모가 나를 버렸다는 생각만을 놓지 않습니다. 그 원망과 미움을 놓으면 자신이 먼저 부모를 떠나왔다는 자책을 해야 하나, 마치 목숨줄처럼 끝없이 고집합니다.
하늘께서는 먼저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셨으니, 해와 달로 비추며 늘 사람의 머리 위로 계셨습니다. 사람이 고개를 들면 하늘을 뵈옵듯, 그처럼 늘 이 땅과 함께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하늘께서 사람을 버리신 양, 자신들이 고아가 된 양, 항상 함께하시는 하늘을 모른다고 하며 부정하였으니 그 생각이, 곧 악입니다. 악은 사람을 파멸시키니, 파멸의 가장 빠른 방법은 하늘을 부정하여 사람이 난 근원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셀라 셀라 셀라 셀라 셀라 셀라 셀라
말씀으로 “그래요. 잘 받들었어요. 잘 지켜오도록 하며, 오늘은 이만 마무리하세요.”라고 하셨습니다.
셀라 셀라 셀라 셀라 셀라 셀라 셀라